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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다이어리

[책]김영하의 천재성을 다시금 느끼게 한 작품, <살인자의 기억법>

by 블루뮤즈 2025. 1. 24.

이미지 출처: 알라딘 공식 홈페이지

 

왜 김영하가 대단한 작가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 작품,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연쇄살인범이 사그라드는 기억을 붙들어놓기 위해 기록한 짧은 글로 구성된 소설이다. 마치 진짜 그가 작성한 노트를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연쇄살인범인 화자가 떠올리는 과거와 생각, 감정에 일반인으로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잠시, 어느 새 그의 화법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 화자인 '나'는 연쇄살인범이다. 현재 그는 입양한 딸 '은희'와 함께 살고 있으며, 살인을 멈춘 지 20년이 지났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서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은희 곁에 수상한 남자 '박주태'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은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사냥을 계획하지만, 기억이 자꾸 사라져 혼란스럽기만 하다.이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기억해야 한다. 내가 한 말을, 내 목적을, 내 행동의 이유를. 녹음하고, 글로 적고 나름의 노력을 하며 기억을 지키려 애를 쓰지만 너무 힘들다. 어떨 땐 내가 적은 글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내가 한 말을 내가 믿을 수가 없다. 점점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믿기 힘들다.

 

독자인 나도 그와 함께 추리를 시작한다.

 

'과연 그의 말은 진짜일까?'

 

이 의심은 그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70세 노인이기 때문인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연쇄살인범 때문인지.

그의 생각을, 기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오직 작가 혼자만 진실을 알고 있는 상황.

 

덤덤한 문체, 그러나 강력한 메시지 작가가 쓰는 글인지, 진짜 연쇄살인범이 쓰는 글인지 헷갈릴 정도로, 너무나도 덤덤한 어투의 고백이 이어진다. 이 덤덤한 문체는 어쩌면 최대한 범죄자에 대한 감정을 이입하지 않으려는 거리두기가 아니었을까?

작가는 이 모든 혼란 속에서 독자를 끌고 가며, 단 한 번도 독자가 진실에 다가서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진실을 숨긴다.

그리고 '연쇄살인'이라는 범죄에 덤덤하게, 하지만 최고로 강력한 철퇴를 내렸다.

살인을 인생 최고의 업적으로 여기는 연쇄살인범에게 유일무이한 제일 강한 형벌 중의 형벌이었다.

책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진실과 예상치 못한 반전은 독자에게 짜릿한 충격을 선사한다.

왠지 그의 덤덤한 분노에 이입해 속이 시원했다.

 

작가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작품의 특별함: 추리와 심리의 결합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화자의 혼란스러운 기억과 그의 기록 속에서 독자는 진실과 거짓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작가가 하나씩 던져주는 진실과 생각하지 못했던 대 반전 앞에서 연쇄 살인범인 주인공도, 독자인 나도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추리 실패...처음부터 승자가 정해진 싸움이었다. 결말을 본 이후,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모두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단순한 언어로 쓰였지만, 한 줄 한 줄이 오래도록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김영하 작가님의 다른 책도 찾아 읽어 봐야겠다.


나의 밑줄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