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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다이어리

책 <프랑켄슈타인>: 창조와 책임,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by 블루뮤즈 2025. 1. 22.

이미지 출처: 알라딘 공식 홈페이지

<프랑켄슈타인>: 창조와 책임,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프랑켄슈타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대부분은 괴물의 형상이다.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프랑켄슈타인의 이름만 들어도 "아~" 하며 나름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프랑켄슈타인은 이미 대중문화 속 친숙하고 익숙한 캐릭터가 된 지 오래됐다. 대중적으로 소비된 이미지 뒤에 가려진 원작이 궁금해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직접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고전을 읽을 때마다 감동하게 된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창조주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려야 했다. 창조주의 이름이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고, 책 속 창조된 존재는 이름 없이 단지 ‘그것’, ‘괴물’로 불린다.


편지에서 시작되는 서사

<프랑켄슈타인>은 월터가 누나 마가렛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된다. 웅장하고 매력적인 북극 탐험을 묘사하며 이야기는 점차 빅토르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창조물로 옮겨간다. 

 

1부에서는 빅토르의 행복했던 유년기와 그의 광기 어린 지적 호기심이 비극을 초래한 과정을 담고 있다.
2부는 창조된 괴물의 고통과 내면을 따라간다. 
3부에서는 빅토르와 괴물의 결말이 전개되며, 빅토르가 구조된 월터의 배 안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화자가 중간에 바뀌어도 감정선을 따라가며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된 서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창조와 책임: 비극의 원인

괴물 창조는 빅토르의 '지적 호기심과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가장 당황하고 불행해진 것도 빅토르 본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창조된 괴물은 태어나자마자 창조주에게 버림받았고, 인간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은 비극을 불러왔다. 인간의 감정을 알게 된 그는 고통 속에서 사랑을 갈망하지만, 무시무시한 형상 때문에 외면받기 일쑤였다. 결국, 그의 외로움과 고통은 창조주인 빅토르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 파멸의 길로 이어졌다.


빅토르의 무책임: 악인의 탄생?

이 작품에서 누군가를 악인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굳이 죄를 묻는다면, 그런 결과가 생길 줄 몰랐다며, 본인이 저지른 일에 도망을 친 '빅토르의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회피하며 괴물을 방치한 결과는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다.

괴물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희생된 사람들, 빅토르 자신, 그리고 괴물 모두 더 나은 결말을 맞이했을지 모른다.


과학과 자연: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공존의 과제

책 <프랑켄슈타인>은 과학기술의 위대함을 찬양하지 않는다. 과학은 빅토르에게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켰지만, 결과적으로 불행을 가져왔다. 반면 자연은 빅토르와 괴물 모두에게 위안과 행복을 준 존재다. 

월터의 편지 속 북극의 웅장함, 빅토르의 행복했던 유년기의 풍경, 괴물이 느꼈던 자연의 아름다움 등은 작품 전반에서 자연이 가진 위대함과 위로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신의 영역을 넘본 빅토르의 행위는 자연의 이치를 무시한 행동일 뿐이다. 자연과 과학을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것은 구태의연한 행위다. 다만 공존의 어려움을 인지하는 만큼, 대안을 찾아야하는 과제는 분명하다.


생명과 창조, 그리고 책임에 대한 질문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공포나 비극을 넘어서, 생명의 탄생과 창조에 대한 도덕적 윤리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작품이다.

빅토르의 행위는 신의 영역을 넘본 결과였으며, 그로 인해 생긴 책임을 회피한 것이 비극의 근원이었다. 오늘날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의 발전을 바라보며 창조주의 윤리와 책임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되는 이유다.

이 작품은 우리가 스스로 던져야 할 깊은 질문을 남긴다. 


"기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