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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다이어리

[책]살인자의 기억법: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by 블루뮤즈 2025. 1. 11.

이미지 출처: 알라딘 공식 홈페이지 https://www.aladin.co.kr

김영하 작가의 천재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작가님의 작품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만, 이번에는 그 천재성을 새삼 깨닫게 된 작품,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다. 이 소설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연쇄살인범 ‘그’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짧게 적어둔 글들을 엿보는 듯한 형식이다.

처음엔 마치 그의 개인 노트를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었지만, 어느새 독자로서 나도 그 안에 몰입하고 있었다.
연쇄살인범이라는 설정에서 오는 거부감도 잠시, 그의 덤덤한 어투와 화법이 독자의 심리까지 스며들게 만든다.

 

덤덤함 속에 숨겨진 강렬함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덤덤함’이다.
‘그’의 고백은 감정적이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된다.
마치 감정을 억누르고 범죄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작가의 의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후반부에 다다르면 이 덤덤함이 얼마나 강렬한 분노와 단호함으로 이어지는지 알게 된다.

‘그’는 인생 최고의 업적으로 여겼던 살인을,
가장 강렬한 방식으로 부정당한다.
결말은 살인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그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형벌이었다.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형벌이었지만, 속이 시원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줄거리

화자인 ‘나’는 과거 연쇄살인범이었다.
현재는 은희라는 딸과 살고 있으며, 20년 동안 살인을 끊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느 날, 딸 은희 곁에 수상한 남자 박주태가 등장한다.
은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사냥을 결심하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그는 점점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된다.


“내가 적은 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내가 한 말을 내가 믿을 수 없다.”

 

독자는 그의 기록을 통해 추리에 동참하게 된다.과연 그의 말은 진실일까?
알츠하이머 환자로서의 착각인가, 아니면 연쇄살인범으로서의 본능적인 거짓말인가?
이 의문은 끝까지 독자를 붙들어 놓는다.

작가의 덫에 걸린 독자

작가는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작가만이 알고 있는 진실이 결말에서 폭발하듯 드러난다.

결국 독자인 나도, 연쇄살인범인 화자도 작가가 설계한 승부에서 패배하고 만다.
결말을 읽은 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경험까지,
이 모든 과정이 작가의 의도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색다른 독서 경험이었다.

읽고 난 후의 여운

《살인자의 기억법》은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간결한 문체로 쓰였기 때문에 빠르게 읽히지만,
내용을 곱씹고 생각하는 데는 한참 걸린다.
이 책을 덮은 후, 김영하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고 싶어졌다.


마음에 남는 문장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다음은 그중 특히 마음에 남았던 구절들이다.

  •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